변기 물로 양치질하던 신혼부부

北 실상과 지원찰미

2024-01-18     홍경석 편집국장
1970년대

청년 시절, 유명 관광지에서 호텔 매니저로 일했다. 당시는 지금처럼 교통편이 좋지 않아 우리 호텔서 며칠씩 묵었다 가는 손님이 허다했다. 또한 주말이면 전국서 신혼부부들이 몰려왔다.

하루는 직원들의 일손이 달려 내가 시골에서 왔다는 어떤 신혼부부의 서빙을 맡았다. 3층의 객실 문을 열고 들어간 뒤 열쇠를 드리면서 욕실에 비치된 타월과 비누, 치약, 칫솔 등을 보여주었다.

1층 카운터로 내려와 숙박계(宿泊屆, 여관이나 호텔에서 숙박인의 성명, 주소, 행선지 따위를 적은 서류 & 당시는 숙박계를 반드시 작성한 뒤 자정 무렵 해당 파출소에 가져가서 담당 경찰관의 확인 사인을 받아야 했다)를 적으려고 다시 올라갔다.

똑똑 ~ 노크를 했더니 “문 안 잠갔슈~”라기에 문을 열고 불쑥 룸으로 들어섰다. 순간, 활짝 열린 욕실 문 덕분(?)에 욕실의 풍경이 펼쳐지면서 나는 그만 기함을 하고 말았다.

신혼부부 둘이 나란히 서서 변기 물로 양치질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금도 거짓이 없는 그 시절의 어떤 해프닝이다.

오늘 자 조선일보 [<양상훈 칼럼> “남조선이 대한민국이라고?”]를 보는데 당시와 비슷한 논조가 그만 마음을 아프게 찔러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기사를 잠시 소개한다.

= “(전략) 지방 수도꼭지는 거의 막혀 있고 평양도 제한 급수다. 강 위에선 빨래를 하고 아래에선 그 물을 길어 마신다. 물 노동은 여성 전담이다. 한국서 샤워기 물을 맞으며 울었다는 탈북 여성이 많다.

한국 도착 직후 처음 본 변기 물로 양치질을 한 탈북민도 있다. 그 물에 손 씻은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북에서 마시던 물보다 그 물이 더 깨끗해 보였다.” =

생사를 건 필사적 탈북 끝에 마침내 우리나라 대한민국에 들어섰을 탈북민(脫北民)을 떠올려본다. 북에서는 삶과 죽음이 지척 간이라고 한다. 영양실조에 위생 상태가 엉망이어서 감기에 걸려 죽기도 한다.

환자가 마취제, 소독약, 붕대, 항생제 등을 장마당에서 사서 병원에 가야 한다. 마취 없는 수술도 횡행한다.

한 탈북민은 “아내 출산 진통이 심해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약과 도구를 사 오라고 했다. 밤중이어서 장마당도 없었다. 헤매다 돌아가니 차가운 철 침대에 아내와 핏덩이 아기가 팽개쳐져 있고 의사는 가버렸다. 그때 탈북을 결심했다”고 했다.

북한군 간호사 출신 탈북민은 “한국 와서 내가 내 혈액형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남조선이 대한민국이라고?” 추가 기사 내용)

상황이 이럴진대 그 깨끗한 변기 물로 왜 양치질을 못할 것이며 또한 펑펑 쏟아지는 샤워기 물을 맞을 땐 어찌 만감이 교차하면서 눈물이 나오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북한 독재자 김정은은 그동안 사용했던 용어인 ‘남조선’ 대신 ‘대한민국 것들’이란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독재체제의 더욱 공고화를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아울러 자국민들은 굶어 죽어가고 있는 데도 여전히 핵미사일 공갈 협박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러한 北의 실상을 새삼 고찰하면서 우리는 동시에 지원찰미(知遠察微)의 지혜와 눈을 길러야 한다.

‘지원찰미’는 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에 나오는 사자성어로 “귀가 밝아 먼 곳의 일을 알고, 눈이 밝아 미세한 곳까지 살피다”는 ‘총이지원(聰以知遠), 명이찰미(明以察微)’가 원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