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그르기 / 유정

2024-08-28     이도훈

공그르기  / 유정

 

 

 

어제는 하루 종일 바람이 바다로 떨어지고

오늘은 빗방울이 쓰러진 이파리들을

다복다복 쓰다듬지

 

춥고 설운 겨울을 뚫고 봄볕이 깨어날 무렵이면

노랑의 이름들이 바다로 내려와 목이 터져라

떠나가 버린 사랑을 부르곤 하지

꽃잎아, 이파리야, 바람아,

수백 개의 떠돌던 아픔들아,

 

탱탱해진 볕살이 상처가 깊은 사람들 눈빛에 닿으면

풋잠 들었다 눈을 뜬 아기 새 노래처럼 새 살이 돋고

기억의 창에 걸어 둔 꽃의 발자국들 지워버릴 수 있을까

벚나무 꽃잎처럼 한 겹씩 환해질 수 있을까

 

누군가 그랬지 상처는 꽃을 덧대면 아물게 된다고

느닷없이 휘몰아친 이별이 하염없어 눈물이 나면

피는 꽃 지는 꽃을 꿰어 공그르기* 했지

사월의 꽃그늘을 떠다가 아픔을 바느질 했지

 

없었던 것처럼 꿰맨다고 바다로 침잠한 이름이

돌아오지 않아

슬픔은 양파 같아서 시간을 벗겨 낼수록

눈물이 흐르거든

흉터로 고여 있다 누군가 건드리면 툭 터져버리지

느닷없이 불어 온 바람에 와르르 떨어진

사월의 꽃잎처럼

 

*바늘땀이 겉에 보이지 않도록 속으로 떠서 꿰매는 것

 

                                       문학매거진 시마(19, 2024년 여름호)

 

유정

2008년 계간 <문파> 등단. 한국문인협회, 한국가톨릭문인협회, 경기시인협회 회원. 계간 <문파> 편집위원. 수필집 발자국마다 봄시집 바람의 문장

 

 

[시평]

유정 시인의 시 공그르기는 자연과 상처, 이별의 감정을 섬세하게 엮어낸 작품입니다. 시인은 바람, 꽃잎, 빗방울 등 자연의 이미지를 통해 아픔과 슬픔을 치유하려는 노력을 그려냅니다. 특히 공그르기라는 바느질 행위를 통해 상처를 덧대어 아물게 하려는 인간의 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며, 슬픔이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깊이 남아있음을 강조합니다. 이 시는 상처를 회복하려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느끼는 고통을 아름답고도 애틋하게 그려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