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금 연말을 맞는다. 이때쯤에 가장 많이 회자되는 말은 단연 “다사다난했던 한 해”라는 표현이다. 올해도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아무튼 연말 시즌(?)인 올 12월 25일부터 12월 29일 어제까지도 나는 하루도 쉼 없이 여전히 바빴다. 그건 모두 지인들과의 송년회 모임이 주를 이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자리에 술은 당연히 빠지지 않았다.
그랬는데 토요일인 오늘도 지인과의 술자리 약속이 잡혀있다. 이처럼 강행군 술자리가 계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새벽이면 일어나 글을 쓴다. 20년 습관과 내공 덕분이다.
어제는 유성에서 방송사 지인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대낮부터 소주를 두 병이나 비웠더니 자욱한 미세먼지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하늘이 더욱 노랗게 보였다.
동석한 피디님이 내년에 나의 새로운 저서 출간에 도움을 주겠다는 약속을 사전에 하심에 따라 준비해 간 서류를 드렸다. “제가 열심히 돕겠습니다!”라는 피디님의 호언장담에 그만 마음이 든든했다.
나는 지인이 퍽 많다. 하지만 상식이겠지만 사람에도 옥석(玉石)이 섞여 있다. 여기서 말하는 옥석은 옥이 들어 있는 돌이거나, 또는 가공하지 아니한 천연의 옥을 말하는 게 아니다.
말 그대로 ‘옥과 돌’이라는 뜻으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옥인(玉人)을 만나면 편하지만, 석인(石人)을 만나면 피곤하다. 석인의 사전적 의미는 무덤 앞에 세우는 돌로 만든 사람의 형상(形象)을 의미한다.
그러나 내가 정의하는 석인(石人)은 돌(石)처럼 무정하고 때론 배신을 밥 먹듯 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사람은 개인마다 특성이 다르다. 나는 사람을 잘 믿는다. 그래서 그동안 적잖게 손해를 많이 봤다.
또한 누가 부탁을 하면 거절하지 못하는 게 또 다른 나의 치명적 결함이다. 특히 취재 요청이 들어오면 대부분 흔쾌히 들어준다. 그것도 커피 한 모금조차 안 얻어 마시며 공짜로. 한데 이처럼 사람이 물렁하다 보니 때로는 나를 노골적으로 이용하거나 무시하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회빈작주(回賓作主, 손님으로 온 사람이 도리어 주인 행세를 한다는 뜻으로, 어떤 일에 대하여 주장하는 사람을 제쳐 놓고 자기 마음대로 처리함을 이르는 말)와 안하무인(眼下無人, 눈 아래에 사람이 없다는 뜻으로, 방자하고 교만하여 다른 사람을 업신여김을 이르는 말)인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경우, 나는 그동안의 물렁물렁함에서 돌변한다. 내재한 감정이 활화산으로 폭발하면서 ‘분노의 헐크’(hulk)로 바뀌는 것이다. 다시는 인연을 맺지 말아야 할 사람으로 인식하고 전화번호부터 삭제한다.
디지털 시대인 만큼 나 역시 지인들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못한다. 또한 갈수록 진보하고 교묘해지는 보이스피싱 사기범들 등쌀에 질린 나머지 모르는 전화는 아예 받지 않는다.
즉, 전화번호를 삭제하는 순간 그동안 맺어왔던 지인의 신분 역시 보이스피싱 사기범 부류에 밀어 넣는 셈이다.
풍수 격언에 ‘천불이지불수’(天不貽地不受)라는 주장이 돋보인다. “악함을 행한 자에게는 하늘이 땅을 주지도 않고, 땅은 그 사람을 받지도 않는다”라는 뜻이다.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이 꼭 그 대상일 터다.
이제 이틀 뒤면 2024년이 시작된다. 새해에는 안팎으로 진정 옥인(玉人, 용모와 마음씨가 아름다운 사람)인 사람만 만나려고 한다.
가수 남진과 윤수현이 함께 부른 히트곡 <사치기 사치기>의 가요에서 “사랑만 하고 가도 아쉬운 인생 티격태격해서 무엇 해”라는 가사가 압권이다. 맞는 말이다. 좋은 사람, 즉 옥인(玉人)만 만나기에도 바쁜 세상이다.
이러한 터에 하물며 피곤하고 심지어 짜증까지 유발케 하는 석인(石人)은 구태여 만날 이유를 발견하기 어렵다. 새해에는 이런 기조로 고고싱(go go sing) 할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