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벽에 SNS로 뉴스를 보다가 그만 어이를 상실했다. [길 가는 20대女에 “교회 가자”…거절당하자, 발로 차고 머리채 잡은 50대 목사]라는 뉴스 때문이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모르는 여성에게 교회에 같이 가자고 얘기한 뒤 이를 거절당하자 머리채를 잡는 등 폭행한 50대 목사가 벌금형에 처해졌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전지법 형사8단독(최리지 판사)은 상해·폭행 혐의로 기소된 A씨(56)에게 벌금 100만 원을 선고했다.
앞서 A씨는 지난해 3월 6일 낮 12시 55분쯤 대전 유성구의 한 거리에서 B씨(여·27)에게 “교회에 같이 가자”고 했으나, B 씨가 거절하고 따라오지 않자 허벅지를 발로 2차례 걷어차고 머리를 잡아끌고 가는 등 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B씨는 전치 약 2주의 상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 결과 A씨는 교회 목사로 B씨와는 일면식이 없는 사이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법정에서 A씨는 정신질환에 따른 심신미약을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피해자와 합의한 사정은 있으나 갑자기 잡아끄는 등 폭행해 상해를 가한 것으로 피해자는 상당한 공포를 느꼈을 것”이라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라고 보도했다.
길을 가다 보면 특정 종교를 믿으라며 포교 활동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서울역 앞은 그 정도가 더욱 더하다. 내한한 외국인들이 어찌 볼까 우려스러울 정도다. 아무튼 자신의 종교는 소중하다.
그렇다면 타인의 종교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대부분 포교인들은 자신의 종교만이 우월하며 타인의 종교는 배척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유감이다. 나는 불교를 믿는다. 하여 불교 사자성어를 호출해 본다.
먼저 몽중설몽(夢中說夢)은 ‘꿈속에서 꿈 이야기를 하다’라는 뜻이다. 회자정리(會者定離)는 ‘만난 자는 반드시 헤어진다’이다.
자비무적(慈悲無敵)는 ‘자비 앞에는 원수가 없다’이며, 애별리고(愛別離苦)는 ‘사랑과 이별의 고통’을 의미한다.
맹인모상(盲人摸象)은 ‘장님이 코끼리 만지기 식이다’이고, 오음성고(五陰盛苦)는 ‘인간은 욕망의 존재다’라는 뜻이다.
선용기심(善用其心)은 ‘마음을 착하게 쓰라’이며, 제악막작(諸惡莫作)은 ‘악행은 무엇이든 하지 말라’이다. 따지고 보면 생면부지의 여성을 폭행한 종교인 역시 이 범주에 속한다.
삼계화택(三界火宅)은 ‘세상은 불타고 있는 집이다’인데 우리가 사는 세상이 때론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심여화사(心如畵師)은 ‘사람의 마음은 화가와 같다’이다. 무엇을 그리냐에 따라 사람의 마음도 달라진다.
적습성성(積習成性)은 ‘습관이 인간을 만든다’는 뜻이다. 평소 소욕지족(少欲知足, 적은 것에서 만족할 줄 알라)을 생활화하면 결코 폭력이 동원될 리 없다.
삼라만상(森羅萬象,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때론 원증회고(怨憎會苦, 싫은 자와 만나야 하는 운명)도 종종 겪는다.
그렇지만 화안애어(和顔愛語, 온화한 얼굴과 부드러운 말씨)로 일관하면 결국엔 발고여락(拔苦與樂, 고통을 없애고 행복을 준다)라는 즐거움과 행복의 플랫폼과 만날 수 있다.
모든 인간은 부처가 될 수 있다(실유불성,悉有佛性). 그대 마음이 바로 부처다(즉심시불,卽心是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