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잠향교(鎭岑鄕校)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교촌로67에 위치한다. 향교는 조선시대 관학교육기관으로서 대성전. 명륜당. 동재. 서재로 이루어져 있다.
향교는 각 지방관청의 관할 하에 두어 부 · 대도호부 · 목에는 가 90명, 도호부에는 70명, 군에는 50명, 현에는 30명의 학생을 수용하도록 하고, 종6품의 교수와 종9품의 훈도를 두도록 <경국대전>에 규정하였다.
향교에는 나라에서 5~7결의 학전을 지급하여 그 수세로써 비용에 충당하도록 하고, 향교의 흥함과 쇠함에 따라 수령의 인사에 반영하였으며, 수령은 매월 교육 현황을 관찰사에 보고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향교는 임진 · 병자의 양란과 서원의 발흥으로 부진하여 효종 대에는 지방 유생으로서 향교의 향교 안에 이름이 오르지 않은 자는 과거의 응시를 허락하지 않는 부흥책을 쓰기도 하였다.
과거제도가 1894년(고종31) 이후 폐지되면서 문묘를 향사할 따름이어서 1900년에는 향교재산관리규정을 정하여 그 재산을 부윤 · 군수 등이 관장토록 하였다. 조선 태종5년(1405)에 창건된 진잠향교는 대성전과 명륜당, 동서양재 등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외삼문 안쪽의 양옆에 동서양재가 서로 마 주보게 배치되어 있고 안쪽에 학문을 가르치던 명륜당이 자리 잡았다. 또 명륜당 뒤로 내삼문을 거쳐 들어가면 높은 대지에 대성전이 위치하고 있다.
이중 대성전은 겹쳐마 맞배지붕을 이루고 있는데 단아하면서도 고상한 멋을 느끼게 한다. 평면은 정면이 3칸, 측면 2칸으로 되있다. 명륜당의 평면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되어 있고 바닥은 대청을 만들었으며 우측 1칸은 온돌방으로 설치됐다.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뒤쪽 대성전의 지붕 및 앞쪽 외삼문의 지붕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외삼문 안 양재 건물은 정면3칸, 측면 2칸에 홑처마 맞배지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진잠향교의 건물들은 당초 창건된 이후 여러 차례의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른다. 한편 진잠향교의 입구에는 홍살문이 설치되어 있고 하마비(下馬碑)도 세워져 있어 조선시대 향교의 위상과 배치 구조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진잠향교는 중국의 공자와 4아성 6현과 우리나라의 18현의 위패를 모시고 봄과 가을(음력 2월 8월의 상정일 上丁日)로 제향을 지낸다. 진잠향교에서 3월 14일 오전 11시부터 ‘공기(孔紀) 2575년 춘계(春季) 석전대제 봉행’이 정중하게 거행되었다.
대전광역시와 유성구청. 대전광역시향교재단이 후원한 이날의 행사는 200여 명의 유림과 주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게 거행되면서 진잠향교의 위상을 새삼 가늠하게 해 주었으며 유교의 도리까지 아울러 전파하는 훈훈함까지 펼쳐져 봄이 완연한 진잠향교와 인근을 더욱 고풍스럽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