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은 흔히 ‘붉은 실’로 비유합니다. 이 ‘붉은 실’을 공식적으로 묶어 주는 것을 결혼이라고 한다면, 이혼은 실을 끊고 인연을 ‘공식적’으로 마무리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변호사로서 많은 이혼소송을 수행하다 보니, ‘인연의 붉은 실’이 끊기는 아픈 과정을 지켜보면서 만감이 교차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오늘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잔뜩 감긴 ‘실타래’를 건넸던 신화 속 여성의 이야기로 시작해 볼까 합니다.
크레타 미노스 왕의 딸인 아리아드네는 미궁 속 미노타우로스에게 공물로 바쳐진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를 보고 첫눈에 반합니다. 크레타의 미궁은 곧 죽음이었고, 설사 미노타우로스를 죽인다 하더라도 그 미궁에서 다시 무사히 빠져나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이때 아리아드네가 조용히 테세우스에게 건넨 것이 그 유명한 ‘아리아드네의 실타래’입니다.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후 실타래를 이용해 미궁을 빠져나온 테세우스와 함께, 아리아드네는 조국과 부모를 떠납니다. 아테네로 가던 도중 두 사람은 결혼을 하고 임신까지 하지만,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를 디아섬(낙소스섬)에 버리고 혼자 아테네로 떠나버립니다. 이리하여 ‘붉은 실’은 끊기고, 아리아드네는 버림받은 여성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를 버린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판본이 있습니다. 몇 가지만 소개해 보자면, ① 아리아드네를 아테네로 데려가면 나쁜 일이 생긴다는 예언 때문이었다, ② 아리아드네에게 관심이 있었던 디오니소스 신이 테세우스에게 그녀를 버리고 출항하도록 만들었다, ③ 임신한 아리아드네가 멀미 때문에 배에서 내려 쉬고 있던 중 갑작스러운 풍랑에 배가 떠내려갔다, ④ 처음부터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를 진심으로 사랑한 적이 없고 단지 미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이용했다, ⑤ 단지 아리아드네에게 싫증이 나서 버렸다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혼소송의 변호사는 두 사람이 이혼할 수밖에 없는 사유 또는 혼인 파탄의 책임을 면하기 위한 사유를 다양하게 구상하여 소송에서 주장하게 됩니다. 제가 테세우스의 변호사였다면 소송에서 위 ①~③의 사유를 주장했을 것 같고, 아리아드네의 변호사였다면 ④, ⑤의 사유를 주장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보면 다양한 판본의 저자들은 마치 양측의 이혼을 담당한 변호사들 같습니다.
통상 이혼소송을 제기하면 대부분 두 사람의 관계는 파탄에 이른 것이고, 그래서 이혼 판결에서 파탄 시점도 이혼 소제기 시점으로 잡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혼소송을 제기했다고 하여 두 사람의 인연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아리아드네와 테세우스의 이야기에서도 두 사람의 인연은 헤어짐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를 이용했던 것이라는 판본(위 ④번 판본)이 대표적인데, 아리아드네를 불쌍하게 여긴 디오니소스가 테세우스에게 돛의 색깔을 흰색으로 바꾸는 것을 잊어버리게 하여, 검은 돛을 본 테세우스의 아버지 아이게우스가 아들이 죽었다고 착각하고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고 합니다. 아리아드네의 입장에서는 권선징악적인 인연의 종결입니다.
그러나 ‘현실’ 속의 이혼에서는 한 편의 부조리극 같은 결말도 있습니다. 늦은 나이까지 독신을 유지하다가 열렬한 사랑에 빠져 결혼하였던 어느 의사 선생님의 사건입니다. 그분은 나이 차이가 상당히 나는 아내와 결혼하였는데, 얼마 지나 아내의 외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했던 만큼 상처가 컸던 그분은 당장 이혼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이혼은 당연지사, 100억 원에 가까운 재산의 분할에서도 상당히 유리한 판결을 기대할 수 있고, 위자료도 청구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연의 상처를 술로 달래던 의사 선생님이 이혼소송 도중 돌연사하고 말았습니다. 가사소송법에 따라 이혼소송 도중 원고가 사망하게 되면 이혼소송은 그대로 종료되고, 이혼의 성립을 전제로 한 재산분할청구나 위자료 청구 역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함께 종료됩니다. 그래서 의사 선생님의 이혼소송 역시 종료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이 맺은 인연의 실은 아직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신 상태였고 의사 선생님 부부 사이에는 아이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혼을 당할 처지였던 아내가 이제 의사 선생님의 유일한 상속인이 되어, 100억 원에 가까운 모든 재산을 상속받게 되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형제들은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처음에 매끈하고 약했던 인연의 실은 살다 보면 연싸움에 쓰는 유리 조각을 바른 실처럼 변하기도 합니다. 이혼으로도 곧바로 끊어지는 것이 아니어서, 특히 슬하에 자녀들이 있는 경우에는 고르디온의 매듭처럼 풀기 어렵고 그것을 푸는 것이 인생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혼을 상담하시는 많은 ‘아리아드네들’은 이혼을 인생의 실패라고 생각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평생을 가정폭력에 시달리다가 황혼이혼을 결심하신 분도 ‘이게 맞는 선택인지 모르겠다. 실패한 인생 같다.’라고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러 이혼소송을 수행하며 많은 ‘아리아드네들’을 만나보니, 한 인연이 끝났다고 하여 인생이 실패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시 아리아드네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버림받은 아리아드네는 디아섬에 홀로 남아 실성한 채로 울부짖고 있다가, 현현한 디오니소스 신을 죽음의 신으로 착각하고 자신을 죽음의 나라로 데려가 달라고 합니다. 아리아드네의 모습을 본 디오니소스는 오히려 사랑에 빠져, 결국 아리아드네를 신의 아내로 맞아들이게 됩니다. 이런 아리아드네처럼, 귀한 인연은 앞의 인연이 끝난 곳에서 시작되기도 합니다.
중세 교부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는 『페르시아 사람들을 위한 요한 서간 강해』에서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 Dilige et fac quod vis’라고 말했습니다. 설마 아우구스티누스가 불륜을 조장한 것은 아닐 겁니다. 저는 이 문구에서 이혼을 ‘인생의 실패’로 여기고 인연을 맺었던 과거까지도 모두 부끄럽고 지워버려야 할 대상으로 여기시던 ‘아리아드네들’을 다시 떠올립니다.
비록 실은 끊어진다 해도, 자신의 실타래를 조용히 건넨 그 순간, 서로의 ‘붉은 실’을 잡으면서 인생의 미궁을 빠져나오려고 했던 그 노력은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이혼판결문을 받은 많은 ‘아리아드네들’이 ‘허무하긴 하지만 자유를 되찾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인연을 끝내면서 자신의 인생을 회복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중세 철학자는 인연(사랑)과 인생(하고 싶은 것)은 ‘하나’ 같지만 ‘둘’이라는 점을 당부했던 것이 아닐까요?
전형호 : 원주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학과,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현)법무법인 새록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