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의 여름, 여름의 마디 / 수경
약간의 어둠이 깃들인 떡갈고무나무의 가지를 젖혀 연초록을 담는다 모두의 여름에는 우기가 있고 타인의 계절에는 습한 숲이 없어 보인다 늘 웃는 나에게도 나뭇잎의 뒷면이 있어 계절병을 앓는다 그늘을 따라가다 보면 그물망을 펼친 잎맥이 있고 빛은 길을 비추기도 하고 가리기도 한다
유심히 지켜봐 주는 나무가 내게는 있다 마디를 소환하면 여름은 의뭉한 생각으로 울창하고 부패하기 좋게 짙어진다 무기력이 노랗게 뜨면 들키기 위해 우는 사람들처럼 목을 놓아 이파리처럼 운다 수장된 시체들이 수면으로 떠오르기 시작할 즈음 카메라는 여름 마디마디를 잡아낸다
소강상태였을 때 나무가 일러 주었다 너도 여름의 한 조각일 뿐이라고 썩은 나무에 우후죽순 솟아나는 이름 모를 버섯 같은 생물종의 하나일 뿐이라고
나에게서 썩은 냄새가 난다
꺾꽂이하기에 딱히 좋은 계절은 아니지만 잘못 접어든 길의 한 토막을 잘라내는 심정으로 마디를 잘라 삽목한다 뿌리가 내리기도 전에 여름은 목까지 차오르고
여름의 일부가 되어 초록을 답습하느라 여념이 없다
문학매거진 시마 (제19호, 2024년 여름호)
2020년 《시인광장》 신인상 수상. 2023년 경기문화재단 기금 수혜. 시집 『딸기독화살개구리』
[시평]
이 시는 여름이라는 계절을 통해 인간의 내면과 삶의 고통을 탐구하는 작품입니다. 시인은 여름의 울창함과 습기를 통해 인간의 무기력함과 내적 갈등을 표현하며, 자신의 어두운 부분을 인정하고 직면하는 과정을 그립니다. "나에게서 썩은 냄새가 난다"는 구절은 내면의 부패와 불안, 그리고 이를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는 태도를 담고 있습니다. 시 전체에서 느껴지는 생명력과 부패, 그리고 재생의 이미지들은 인간 존재의 복잡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