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사성(孟思誠)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자 정치인, 유학자였다. 고려국 전의시승, 조선국 판한성부사 등을 지냈다.
본관은 아산의 신창이며 자는 자명(自明), 호는 고불(古佛)로 유명하다. 맹사성은 충청남도 아산 온양 출신으로 맹희도의 아들로 태어났다.
고려 말에 관직을 역임하고 수문전제학에 이르렀던 아버지 맹희도는 조선 건국 이후에도 검교한성윤에 임명되었으며 사후 우의정에 증직되었다. 맹사성은 부친 이상의 청백리로 이름을 떨쳤다.
또한 맹사성은 최영의 손녀 사위였는데 처조부인 최영을 본받아 인생의 사표로 삼았다. 또한 그의 재능을 특별히 눈여겨본 조선의 태조 이성계는 그가 자신의 정적 최영의 손녀사위임에도 연좌(緣坐)시키지 않고 중용하였다.
조선 최고의 재상(宰相)으로 추앙받았던 문신 맹사성은 벼슬을 내려놓고 온양(溫陽)에 내려가 초야(草野)에 묻혀 살았다. 그만큼 출중한 인물이었기에 그 고을에 신임 사또가 부임하면 반드시 맹사성을 찾아가서 인사를 올리는 것이 관례처럼 되었다.
어느 날 새롭게 부임한 사또가 인사를 하기 위해 관아의 관리들을 거느리고 맹사성을 찾아갔다. 마침 밭에 나가 김을 매고 있던 맹사성은 사또가 온 것을 알았지만 그를 밭의 둔덕에 세워둔 채 김만 계속 매고 있었다.
돌아갈 수도 그냥 서 있을 수만도 없던 사또는 팔을 걷어붙이고 밭에 들어가 함께 김을 맸다. 사또가 움직이자, 관아의 관리들도 서로 질세라 열심히 김을 맸고, 해가 질 무렵이 돼서야 맹사성은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그만들 하시고 나오시게" 밭의 둔덕에 자리를 마련한 맹사성은 그제야 신임 사또의 인사를 정중히 받으며 말했다.
"고을(縣)의 사또로 오셨으니 오늘 하루만이라도 뙤약볕에서 땀 흘려 일해 보면 이 고을 백성들의 노고가 어느 정도인지 아셨을 것입니다. 아침저녁 밥상을 대할 때마다 밥알 하나하나에 맺혀있는 백성들의 땀을 생각하십시오. 그리하여 부디 모든 이에게 존경받는 목민관(牧民官)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에 신임 사또가 얼마만큼 뜨거운 존경심과 무거운 책임감(責任感)을 느꼈을지는 안 봐도 비디오다. C일보는 오늘 자 사설에서 “장난처럼 되는 재판, 판사들 무책임 정치편향 도 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 1심 재판을 16개월 끌다 선고를 하지 않고 돌연 사표를 낸 강 모 부장판사의 무책임을 직격한 것이었다.
해당 판사는 안팎의 비판이 거세자 대학 동기 단체 대화방에 “내가 조선 시대 사또도 아니고 증인이 50명 이상인 사건을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라는 해명의 글을 올렸다고 한다.
그렇지만 어딘지 궁색해 보인다. 판사의 판결에 따라 피의자는 천당과 지옥을 경험한다. 따라서 판사는 얼마만큼의 책임감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지를 새삼 가늠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