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쉽게 'Yes'라고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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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쉽게 'Yes'라고 하지 마라
  • 김승수 기자
  • 승인 2024.03.28 12: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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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세보다 20퍼샌트도 넘게 아파트를 싸게 사놓고 억울해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사촌 동생의 집들이에 초대받았을 때의 일이다.

강남에서도 좋은 곳에 위치한 중형 아파트를 사서 입주한 사촌은 맛있는 음식을 차려놓고 가까운 친척들을 초대했다.

결혼한지 15년이 넘도록 집장만을 못 하고 전셋집에서만 살던 중 거품이 빠지며 부동산 가격이 폭락했을 때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고 집을 마련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이 생각나 속으로 옷으며 작은 선물을 사 들고 찾아갔다.

식사를 마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물었다.

"위치도 좋고 인테리어도 좋은데 얼마나 주고 샀어?"

"5억 7,000만원,그리고 이사 비용 50만 원은 집주인이 해주는 조건으로 샀지. 현금은 2억 원밖에 없었는데 은행 대출 3억 5,000만원 하고,회사에서 2,000만 원 대출받았어."

"그렇게 싸게 샀어? 아파트값이 정말 많이 내렸군.예전이라면 7억5,000만 원쯤 했을 텐데. 내가 귀국해서 집 보러 다닐 때 하도 비싸서 이 동넨 두 번 다시 오지 말아야 겠다 한 적이 있거든. 아무튼 싸게 사서 기분 좋겠네."

"싸게 산 것 같기는 한데 기분이 영 찜찜해. 더 갂을수 있었는데 하는 억울한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아니,그렇게 싸게 사고도 그래? 사기 전에 주변 시세는 알아봤을 거 아냐?"

"물론 알아봤지.시세는 6억 2,000만 원쯤 했고, 이 집은 6억 3,000만 원에 나와 있었어. 그래서 시세보다 한 2,000만 원쯤 싸개 살수 있다면 내 1년 연봉의 절반은

버는 셈이구나 생각하고 집사람하고 작전을 세웠거든. 목표를 6억원으로 정하고 처음에는 되든 안되든 5억7,000만원에 해달라고 배짱 좋게 나갔지.

차츰 올려서 6억에 맞출 요량으로 말야.

물론 5억 7,000만 원이면 2주일 이내 현금으로 지급하고 이사하겠다는 조건을 달긴 했지만. 그런데 황당하게도 당장 계약하자고 나오는 게 아니겠어?

처음엔 이게 웬 떡이냐 하고 좋아하다가 집주인이 너무 쉽게 승낙을 하니까 혹 아파트에 이상이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우선 등기부등본 떼어본 다음에 하자가 없으면 바로 계약하자고 했지.

다음날 등기부등본을 확인해보니 은행 융자 외에는 아무런 하자도 없는 거야.

결국 5억 7,000만원에 계약서를 쓰는데 기분이 되게 찜찜하더라고. 그래서 계약하면서 이사 비용으로 50만원 만 더 깎아달라고 했더니 그것도 좋다는 거야.

그쯤 되니까 내가 왜 5억 5,000만원을 부르지 않았나 후회막급이야. 지금도 그생각만 하면 잠이 안 온다니까."

만약 처음에 5억7,000만 원을 제시했을 때 집 주인이 6억 2,000만원 이하로는 절대 안 된다고 버티다가 5억 9,500만 원정도에서 합의를 보았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사촌은 5억 7,000만원에 산것보다 훨씬 기분이 좋았을 수도 있다.

물론 아내에게도 "거 봐, 내가 협상을 잘해서 시세보다 2,500만 원이나 싸게 아파트를 샀잖아." 하고 자랑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너무 쉽게 5억 7,000만 원에 아파트를 구입한 사촌 동생은 지금 아내 앞에서 자랑은 커녕 협상 이야기조차 꺼내기 힘들게 된 것이다.

아무리 급해도 너무 빨리 'Yes'를 해버리는 습관은 협상에선 절대 금물이다.

내가 해준 양보가 협상에서 얼마만큼의 비중을 가지고 있는지에 상관없이 간단하고 쉽게 양보했다고 보이면 상대방은 오히려 이를 기회로 삼아 협상을 자신의 페이스로 이끌어가면서 더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된다.

집주인이 계약을 체결할 욕심에 너무 쉽게 가격 제안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싼 가격에 집을 사고도 집주인의 양보를 고맙게 생각하지 않고 추가로 다른 것을 요청하는 빌미를 주었다.

결과적으로 사촌에게도 싸게 샀다는 만족감을 줄 수 없었다.

협상 결과에 대한 만족감은 개인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꼭 내용만 중요한 것은 아닌 듯싶다.

오히려 어렵사리 상대방에게 'Yes'를 끌어냈을 때의 만족감이 더 큰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협상 고수는 협상 결과뿐 아니라 협상 과정이 상대방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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