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풍요를 지향한다. 풍요(豐饒)는 ‘흠뻑 많아서 넉넉함’을 뜻하기 때문이다. 자녀가 많아도 좋고 재물까지 넉넉하면 금상첨화(錦上添花)다.
간담상조(肝膽相照)의 친구가 많으면 더 좋고, 세상까지 나를 알아준다면 더 이상 바랄 나위가 없는 그야말로 유토피아(Utopia)가 될 터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다. 가파르고 풍진 세상살이는 본디 내 마음대로 술술 풀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작위적이나마 풍요를 느끼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우선 나는 지금 일곱 번째 저서의 탈고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내가 만족하여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야만 비로소 출간과 이어진다.
따라서 나는 지금 엄연히 갑(甲)의 우월적 입장이다. 이 또한 풍요의 정서와 맥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론 얼마 전 아들이 미국으로 회사 출장을 떠났다는 사실이다.
반면 나는 입때껏 미국은커녕 일본조차 여행을 갈 수 없는 전형적 서민의 터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렇지만 아들은 귀국할 때 분명 나와 아내도 흡족한 선물을 사들고 올 게 틀림없다.
딸과 마찬가지로 아들 역시 자타공인의 효자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이르길 인생은 야구라고 했다. 평소 어렵고 힘들지만 참고 견디며 노력하면 반드시 9회 말 역전 홈런을 칠 수 있기 때문이다.
맞는 말이다. 한데 그렇게 되려면 반드시 견지하고 실천해야 하는 게 있어야 한다. 그건 바로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귀양지에서도 자식들에게 서한을 보내 필독서를 지정해주며 독후감을 써 보내라고 요청하는 등 학문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그 결과, 조선 최대의 학자로 꼽히며 귀양 18년 동안 무려 500권이 넘는 저서를 남겼다.
그 또한 비록 현실은 누추했지만 마음만큼은 그 어떤 만석꾼조차 부러워하지 않을 만큼 바다보다 너른 마인드와 정서적 풍요를 견지한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어렵다고 푸념이다.
그러나 이를 ‘오히려’의 긍정 개념으로 치환하는 마음가짐이 견지된다면 풍요는 여전히 내 것이 될 수 있다. “장맛비가 너무 쏟아져요!”라는 우려에 “그렇지만 오히려 저 풍족한 비 덕분에 올 농사도 풍년 아닐까?” 라는 담대한 답변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