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택근의 야생화 이야기_물매화
졸시 ‘꽃으로 계절을 읽다’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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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솔나리마저 얼굴을 보이면
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들 때가 되었다.
구절초와 쑥부쟁이가 가까운 곳에서부터 피어나고, 보석 같은 물매화가 피고 난 후
나는 고통스런 성례聖禮인 양 먼 곳으로 정선바위솔과 둥근바위솔을 보러 가야 했다.
그 기억으로 긴 겨울을 보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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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내가 꽃으로 계절을 읽는 동안,
꽃은 내 인생의 계절을 읽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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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있어 가을은 물매화가 피어나는 즈음부터 시작하여 물매화가 진 후 꽃자리마저 스러지면 끝이 납니다. 이후는 그저 가을의 잔영과 다가올 겨울의 징조들로 시간이 채워집니다. 환한 겨울이 시작할 때까지 말입니다.
언젠가 한 지인께서 제 사진을 한참 바라보신 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샘은 유독 물매화를 애정하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쵸?” 속내가 드러나 오히려 기분 좋아지는 느낌을 오랜만에 경험했습니다. 돌이켜보면 2022년에는 영월에서, 2021년에는 정선과 영월에서, 그리고 2020은 상주에서, 2019년은 천안과 상주에서.. 그렇게 저의 가을은 물매화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물매화, 범의귀과로 학명은 Parnassia palustris L입니다. 늪이나 습지에서 주로 자라기 때문에 생겨난 이름일 것입니다. 꽃은 8월에서부터 10월까지 피어납니다. 꽃잎은 5장으로 타원형이며, 길이 7~10mm로서 하늘을 향해 수평으로 퍼져 있습니다. 5개의 수술과 또 다른 5개의 헛수술이 있는데 특히 헛수술은 끝이 12~22개로 갈라지고 끝에 황록색의 선腺이 있습니다. 씨방은 상위이며 암술대는 4개로 갈라집니다. 엷은 미색의 암술, 혹은 드물게 보이는 붉은색의 암술, 그리고 헛수술이 꽃의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곤충을 유인하는 데 효과적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오래전 옥황상제의 정원을 관리하던 선녀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황소가 달려 들어와 상제가 아끼던 정원을 망쳐버렸습니다.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선녀는 쫓겨났는데, 하늘가를 떠돌다 호수에 떨어져 물매화로 변했습니다. 그 마음인 듯, 단 하나의 줄기에 하나의 잎과 단 하나의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아마도 스스로에게 충분한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른 봄의 매화와도 같이 물매화의 꽃말도 고결, 결백, 충실 등을 지니고 있습니다.
바람의 결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나의 계절을 읽기 위해 물매화를 보러 떠나야겠습니다.
* 꽃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을 참조했습니다
정택근 / 농부, 생태사진작가
사회복지사로 늘푸른마을노인요양원장, 지적장애시설인 예닮원장, 충청남도 노인복지협회 부회장 등 을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