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상처가 세계이다
―캐나다 원주민 시인 빌리-레이 벨코트
오민석
이 자리를 통해 한국의 문예지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빌리-레이 벨코트Billy-Ray Belcourt는 크리Driftpile Cree Nation 원주민 출신의 캐나다 시인이다. 그는 1994년에 태어났으며 19세에 시를 쓰기 시작했다. 2017년(23세)에 나온 그의 첫 시집 『이 상처가 세계이다This Wound is a World』는 캐나다 국영방송 CBS에 의해 2017년 최고의 시집으로 선정되었으며, 2018년에 그는 역대 최연소로 그리핀 시문학상Griffin Poetry Prize을 받았다. 그리핀 시문학상은 캐나다의 가장 유력한 문학상 중의 하나이며, 2019년에 김혜순 시인이 이 상의 국제 부문 수상자가 되어 한국에도 잘 알려진 상이다. 그는 또한 같은 시집으로 로버트 크로취 에드먼튼 시 북 프라이즈Robert Kroetsch City of Edmonton Book Prize를 수상하였고, 거버너 제너럴 시문학상Governor General’s Literary Award for Poetry, 제럴드 램퍼트 기념상Gerald Lampert Memoriall Award 등 쟁쟁한 문학상들의 최종 후보에 올랐다. 첫 시집으로 엄청난 주목을 받은 그는 2019년(25세)에 두 번째 시집 『북미 원주민의 대응 기제들NDN Coping Mechanisms: Notes from the Field)』을 출판했으며, 이 시집은 2020년 람브다 문학상Lambda Literary Award 등 여러 문학상의 최종 후보에 올랐고, 스테펀슨 시문학상(Stephan G. Stephanson Award for Portry을 그에게 안겨주었다. 백인 주류의 캐나다 문단에서 원주민 출신 작가들이 거의 주목을 받고 있지 못하며, 학계에서도 원주민 작가들의 작품에 관한 연구가 극히 미미하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벨코트가 원주민 출신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엄청난 주목을 받은 것은 극히 예외적인 현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벨코트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그가 백인 주류 사회에서 원주민 출신으로서 강력한 저항의 목소리를 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커밍아웃을 한 성적 소수자로서 노골적인 분노와 슬픔의 목소리로 이성애 주류 담론에 마구 구멍을 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또한 앨버타 대학University of Alberta 비교문학과를 최우등으로 졸업했을 뿐만 아니라, 북미 원주민으로서는 처음으로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수여하는 로드즈 장학금Rhodes Scholarship을 받고 여성 연구women studies로 옥스퍼드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다시 캐나다로 돌아와 앨버타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자마자 2020년(26세)에 브리티시 콜롬비아 대학교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문예창작학부의 조교수가 된 이력이 암시하듯이 그는 인문학 이론으로 단련이 된 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탈식민주의, 포스트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퀴어 이론 등으로 중무장한 상태에서 개념어와 감성적인 언어를 독특하게 배합하여 자신만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는 주목 받는 신예이다.
이것은 알버타주, 죠서드에 있는 기숙학교야.
뼈대 말고도 그 흔적이 많이 남아있지.
우리는 지금 감금의 사후생활이라는 진창에 빠져 있지.
철창들은 몸들로 만들어졌어,
그리고 몸들은 뒤에 남은 것으로 만들어졌지.
이것이 우리가 물려받은 세계야.
그것에는 대답 없는 질문처럼 대기 중에
떠돌 수밖에 없는 폭력이 스며있지.
―「하늘 마음대로」 부분(이하 이 글에 인용된 모든 시는 오민석 역)
벨코트는 이 작품 앞에 실제로 알버타주 죠서드라는 지역에 남아있는 “기숙학교residential school”의 사진을 배치해 놓았는데, 이 작품을 이해하려면 기숙학교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캐나다에서 기숙학교는 대략 1847년경에 시작되어 비교적 최근인 1996년경까지 거의 150년에 걸쳐 백인들이 원주민 자녀들을 가두어 놓고 소위 ‘문명 교육’을 실시하던 학교였다. 말이 문명 교육이지 이 학교는 정복자인 백인들이 원주민들의 언어와 문화와 종교를 말살하고 그 자리를 자신들의 언어, 문화, 종교로 대체하는 끔찍하기 짝이 없는 ‘인종 개조 학교’였다. 원주민들에게 기숙학교는 처음엔 선택사항이었으나 소위 ‘인디언 법령Indian Act이 실시된 1884년 이후에는 강제조항이 되었고, 6세에서 16세 사이에 해당하는 원주민의 자녀들은 가족에게서 강제로 분리되어 기숙학교에 수감되어야 했다. 기숙학교를 나온 10대 후반의 원주민 자녀들은 영혼을 강탈당한 채 백인 주류 사회뿐만 아니라 자기 부족으로부터도 철저하게 소외된 상태에서 극심한 혼란과 절망 속에서 마약 중독, 알코올 중독, 자살, 각종 범죄 등에 노출되었다. 기숙학교에서도 이들은 부족한 재원을 메꾸기 위해 거의 매일 강제노동에 동원되었고, 엄한 규율과 영양실조, 백인 성직자들과 교사들에 의한 성폭행에 시달렸다.
위 작품에서 “철창들”은 그런 기숙학교를 지칭하면서 동시에 몸으로서의 원주민 주체성을 규정하고 범주화하는 백인 담론을 총칭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소위 ’몸의 정치학biopolitics‘으로서 원주민들의 “몸들”을 타자화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원주민들에게 현재(“지금”)는 “감금의 사후생활이라는 진창”이다. 백인 침략자들에 의해 자신의 땅에서 유배당한 원주민들이 “물려받은 세계”란 이렇게 백인의 폭력으로 타자화된 “진창” 밖에 없다.
하나님은 틀림없이 인디언이야, 그가 말했지
왜냐하면 너희 수많은 인디언은 마치 하늘처럼 말하거든.
아마도 나는 말하는 사람이야.
아마도 내 몸은 우리 모두가 연관된 내면의 조크야.
이제 은유를 위한 시간이야.
나에게 젠더를 줘봐,
그러나 그것이 촛불 시위 같은 것일 때만 말이지.
기억해, 슬픔이란 세상에 자기주장을 하는 한 방식이야.
우리 쿠큼(역주: 할머니를 지칭하는 크리 인디언 단어)이 이렇게 물으셨어, 울음엔 뭔가 인디언적인 것이 있나?
오늘 밤 나는 내 옛날 애인들을 내 팔에 껴안고
내가 무덤이 아니라는 사실을 설득할 거야.
어둠 속에서 우리는 아무도 이름을 갖고 있지 않고 그 누구도 신성하지 않아.
하나님은 틀림없이 인디언이야, 그가 말했지.
이것은 연애 시가 아니야.
―「하나님은 틀림없이 인디언이야」 전문
벨코트는 인디언(원주민)의 언어를 “하늘”의 언어로 은유한다. 그러나 동시에 인디언의 언어는 “슬픔”의 언어이다. 인디언은 슬픔으로 세상에 말을 건다. 인디언은 “울음”의 존재이다. 슬픔과 울음은 세상에 던지는 인디언의 “자기주장”이다. 그러나 슬픔으로 세상에 말을 거는, 즉 “말하는 사람”은 존재의 “무덤”이 아니다. “촛불 시위”가 상징하는 것처럼 “젠더”는 논쟁의 여지가 많은 기호이다. 누가 “어둠 속에서” 젠더를 호명하는가. 어둠 속에서 “우리는 아무도 이름을 갖고 있지 않”다. 그 어떤 젠더도 그 자체로 “신성하지 않”다. 이 시 속의 화자는 인디언이자 성적 소수자로서 자신의 존재가 “무덤”이 아니며 자유롭게 사랑할 권리가 있는 주체임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 시가 연애 시가 아닌 이유는, 이 시가 인종 모순과 성적 모순의 문제를 동시에 다루고 있는 ’정치적인‘ 시이기 때문이다.
시는 방이다
나는 그 속에 나의 자전적 자아를 퍼넣는다.
어둠 속에서 나는 기호이다
나는 기표와 기의 속으로 들어가 한 발로 서서 돈다.
……
미래의 천국을 부르고
현재의 로맨스를 처리하자.
현재는 실수였다.
―「현재의 로맨스」 부분
벨코트는 자신의 시가 “자전적 자아”의 기술記述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또한 원주민 퀴어로서 자신의 주체성이 “기표와 기의”로 이루어진 언어적 구성물linguistic construct임을 밝히고 있다. 언어적 구성물은 권력을 가진 주체들의 담론으로 이루어진다. 백인 이성애 주류의 캐나다 사회에서 원주민 퀴어는 철저하게 백인의 시선에 의해 ’비정상‘으로 규정되고 범주화된 서발턴subaltern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원주민과 퀴어들에게 “현재는 실수”이다. 그들의 언어는 슬픔으로 특징지어진다. 그러나 벨코트는 원주민들의 울음의 언어가 백인 주류 세계에 말을 거는 방식이라고 본다. 그들의 울음 속에는 “미래의 천국”을 부르는 유토피안 욕망이 스며 있다.
그러나, 보호구역은 아직 오지 않은 유토피아의 자리가 아니야. 유토피아를 목적론적으로 항상 감질나게 도래하는 종말로 제시하는 대신에, 나는 보호구역의 사람들을 유토피아 세계의 시민으로 이해해. 캐나다의 감각중추와는 반대되는 감성의 구조 속에 이미 얽혀들어, 보호구역의 사람들은, 대안들, 즉 혁명적 정념의 안무에 동기화되어 있지. 말하자면, 우리는 “당신들이 볼 수 없는 모든 것의 가능성”을 즐기고 있다는 거야.
―「붉은 유토피아」 부분
벨코트에게 유토피아는 “종말”의 시간에 계시처럼 이루어지는 판타지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이곳이 아닌 “대안들”을 상상하게 하는 실질적인 힘이고 에너지이다. 원주민들의 “붉은 유토피아”는 백인들(“당신들”)이 “볼 수 없는 모든 것의 가능성”이다. 벨코트가 보호구역의 원주민들을 “유토피아 세계의 시민”으로 부르는 이유가 이것이다. 유토피아는 가장 힘들고 슬픈 바닥에서 “동기화”된다. “희망에 술 취한 상태, 이것이야말로 모든 원주민의 가장 원주민다운 느낌”(「현재의 로맨스」)이라는 고백은 원주민들의 이런 “혁명적 정념”을 잘 보여준다. 그리하여 벨코트는 자신의 시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그 안에서 어제(과거)가 절대 오지 않는 시; 그 안에서, 우리의 난파한 나라가 새롭게 시작할 시간조차 남기지 않으면서, 우리가 유토피아의 속도로 사랑하는 시.”(「가정들」)
- 문학매거진 <시마>(제19호, 2024년 여름호)
오민석 :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이며, 현재 단국대학교 영미인문학과 명예교수이다. 1990년 월간 <한길문학> 창간기념 신인상에 시가 당선되어 시인으로 등단하였으며,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당선되며 평론 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집 『굿모닝, 에브리원』 외 문학평론집 『이 황량한 날의 글쓰기』 외 문학이론 연구서 『현대문학이론의 길잡이』 외 문학 연구서 『저항의 방식: 캐나다 현대 원주민 문학의 지평』, 대중문화 연구서 『나는 딴따라다: 송해 평전』, 『밥 딜런, 그의 나라에는 누가 사는가』, 시 해설서 『아침 시: 나를 깨우는 매일 오 분』, 산문집 『나는 터지기를 기다리는 꽃이다: 먹실골 일기』 외 번역서 바스코 포파 시집 『절름발이 늑대에게 경의를』, 『오 헨리 단편선』 외 다수가 있다. <단국문학상>, <부석 평론상>, <시와경계 문학상>, <시작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