댈러스 기행 - 손용상 시인과 한솔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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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스 기행 - 손용상 시인과 한솔문학
  • 이도훈
  • 승인 2024.08.14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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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스 기행 - 손용상 시인과 한솔문학 / 이도훈

 

 

2023년 <한솔문학> 9호(여름호)가 출간되고 나서 손용상 대표와 통화를 했다. 

“연말에 10호가 나오면 내년 2월 말이나 3월 초에 한번 봐요. 기념식이든 뭐든 해야지.”


그때가 9월쯤이었다. 반년간지로 10호, 5년의 세월이다. 나는 내년 LA 여행 때 댈러스까지 가는 여행을 준비했다. LA에 있는 딸도 댈러스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해서 비행기 표를 미리 예약해 놓으라고 했다. 
그리고 <한솔문학> 10호를 준비하던 중 손 선생님이 요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며칠 뒤 선생님은 몸 관리 차원에서 잠시 요양원에 들어간 것이라며 전화하셨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그렇게 간단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았다. 

“원고는 준비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오!”

선생님을 처음 만난 것은 윤00 시인이 그분의 시집을 내달라고 부탁하면서였다. 그리고 나는 <시마>를 창간했고 뒤이어 손 선생님이 문학지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손용상 시인은 소설가이기도 하다. 197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방생」이라는 단편소설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왔다. 

그 시대의 유명한 작가들과 어울렸기 때문에 미국에 계셨어도 한국 문단에 연결되는 분들이 꽤 많았다. 
<한솔문학>은 순탄하게 발간되었다. 선생님은 댈러스 지역 신문에서 편집일을 보면서 번 수입 중에서 매달 일정 금액을 보내주었고 그 돈으로 <한솔문학>을 발행했다. 자금이 여유롭지는 않았다. 잡지가 발행될수록 페이지는 계속 늘어났다. 창간호는 352페이지였는데 8호는 528페이지나 되었다. 


“선생님, 책이 너무 두꺼워요. 받는 사람도 부담스러울 거 같아요. 원고를 좀 줄이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페이지가 많이 나오면 인쇄비나 무게에 따른 배송비도 올라간다. 선생님은 <한솔문학>이 나오면 항공으로 한두 박스를 먼저 보내라고 했는데 그 비용도 100만 원이 넘었다.


“이걸 항공으로 보내라고 뭐요? 정말요??”

<한솔문학> 창간호가 나왔을 때 지금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이신 김호운 선생님과 함께 댈러스에 갔었다. 
<한솔문학> 출판기념식이 있었고, 문학 강연도 있었다. 그때 손용상 대표를 처음 만났는데 그는 이미 풍을 맞아 몸 반쪽을 잃은 상태였다. 그래도 목소리에 힘이 있었고, 강한 리더십으로 사람들을 이끌었었다.

 

2021년 <한솔문학> 창간기념 세미나에서, 앞 줄 왼쪽에서 세 번째 손용상 작가, 김호운 작가(현 한국문인협회 회장), 연규호 소설가, 그 뒤에 계신 분이 조석진 사모. 손용상 선생님 뒤에 이도훈 시인(나), 왼쪽이 김미희 시인

 

12월 초 댈러스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안 좋은 소식이 계속 들려왔다. 손 선생님으로부터 메일로 간간이 원고가 왔지만 나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전화 통화도 몇 번 했었다. 선생님이 괜찮다고는 말했지만, 목소리에는 힘이 다 빠져 있었다. 그러다 12월 말쯤 선생님이 전화했다. 

“내 몸이 다 나았어. 기적 같은 일이야! 나도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어. 제2의 인생을 사는 거 같아.”

 곧 퇴원한다고 전화하셨는데 목소리가 너무 힘찼다. 나는 한국에 있는 손용상 선생님의 지인들에게 전화했다. 
“저기… 손용상 선생님이 다시 살아나신 거 같아요…”

정말 놀라웠고 어리둥절했다. 선생님은 정말 건강이 회복된 듯 보였다. 연말까지 나머지 원고를 정리해서 보내준다고 했다. 10호가 좀 늦어졌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일은 이렇게 헤프닝처럼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며칠 후 댈러스에 있는 한 선생님이 손용상 선생님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해줬다. 요양원에서 회복이 되었는데 그 병동에 코로나 환자가 발생되어서 다시 격리에 들어갔고 선생님도 코로나에 걸려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선생님은 돌아가셨다. 그는 파란만장한 삶을 보내고 개인 작품집 여러 권과 
<한솔문학> 아홉 권을 남겼다 

2월 말 LA에 도착해서 며칠 쉬고 3월 초 주말을 이용해 댈러스로 갔다. 포트워스공항에 도착하니 김선아 작가가 마중을 나왔다. 무척 반가웠다. 김선아 작가는 우리 가족을 데리고 먼저 댈러스 시내를 구경시켜 주었다. 시내에는 미술관과 박물관 등이 많았다. 김선하 작가는 댈러스가 예술의 도시라고 강조했다.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저녁쯤 모임이 있는 식당으로 갔다. 댈러스 교포 문인들이 모여 식사와 한솔문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 날 아침에 호텔 테라스에서 본 텍사스는 조용하고 평온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딸 친구가 우리를 데리고 가장 텍사스다운 BBQ 레스토랑으로 데리고 갔다. 음식은 정말 택사스다웠다. 스테이크가 맛있고 신선했는데 고기가 많이 기름진 것 같았다. 음식값은 LA와 비교해 많이 저렴했다. LA에 살다가 텍사스로 이주한 딸 친구는 두 지역의 장, 단점 등을 이야기해 주었고 지금 미국 젊은이들, 특히 교포 젊은이들의 고민거리를 풀어놓았다. 
오후에는 김선아 작가가 우리를 데리고 가장 텍사스다운 관광지 스톡야즈(Fort Worth Stockyards)로 갔다. 자신의 몸보다 긴 뿔을 갖고 있는 텍사스 소들을 모는(캐틀 드라이브) 카우보이들도 구경하고 한쪽 실내 공터에서는 카우보이들이 뭐라뭐라~ 떠들며 연극하는 ‘OK 목장의 결투’도 보고 즐거운 오후를 보냈다. 시간이 지나도 댈러스는 별로 바뀐 게 없는 것 같았다. 결투 장면을 연극하던 카우보이 배우 한 명이 젊은 사람으로 바뀐 것 같았다. 그리고 또 바뀐 것이 있다면 이제 댈러스에서 손용상 선생님을 볼 수 없다는 것. 

 

캐틀 드라이브


저녁에도 댈러스 교포 문인들을 만났다. 저녁을 먹으며 앞으로 <한솔문학>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 의논했다. 그리고 김선하 작가, 김미희 시인과 나는 호텔 로비에 있는 카페에서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댈러스 여행 마지막 날 밤이다. 이곳의 밤은 제주 밤하늘 처럼 칠흑같이 어두웠다. 

마지막 날, 아침부터 짐을 챙기느라 분주했다. 예정대로 손용상 선생님께 인사드리러 갔다. 선생님이 계신 Rolling Oaks Memorial Center는 한적하고 넓고 조용했다. 굴곡진 그의 삶이 평평하게 다져졌고 잔디는 아직 덥히지 않았다. 
나는 이 세상에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나는 늘 내 마지막이 궁금하다. 어찌 됐든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만…. 
한참을 그의 묘지 주변에서 어슬렁거렸다. 생각해보면 나에게 참 고마운 분이었다. <한솔문학>을 만들면서 일도 많고 힘들기도 했지만, 지나고 보니 다 할만했다. 선생님 덕분에 나도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여기 댈러스에 또 올 일이 있을까? 내가 이 사람들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하루종일 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손용상 시인의 묘소에서 (Rolling Oaks Memorial Center)
왼쪽부터 김미희 시인. 이도훈 시인(나), 김선하 작가, 조석진 사모


Rolling Oaks Memorial Center를 나와 그 지역에서 도넛을 제일 맛있게 만든다는 도넛 가게를 갔다. 댈러스의 도넛 가게는 대부분 한국인들이 하고 있는데 거의 모든 가게가 영업이 잘되고 있다고 한다. 도넛 가게 영업시간이 낮 12시까지였는데 우리는 거의 문 닫을 시간쯤에 가게에 들어갔고 도넛 가게 주인아저씨와 느긋하게 커피와 도넛을 먹으며 여유롭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도넛 가게를 나와서 김선화 작가와 김미희 시인이 우리를 끌고 이곳저곳으로 데리고 다니느라 분주했다. 페인트 락카로 그림이 그려진 그래피티 거리와 댈러스에서 가장 핫한 곳인 비숍 아트 거리(Bishop Arts District)를 들르며 관광했다. 비숍 거리는 골목마다 아기자기하고 세련된 가게들이 즐비했고 가게마다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 

“선생님, 비행기 놓치겠어요. 그만 공항으로 가요.”

 2박3일, 짧은 일정이었지만 몇 달 전부터 준비하고 기다렸었다. 예정대로였다면 <한솔문학> 10호 발행기념이란 큰 현수막을 걸고 문학 강연도 함께 했을 건데 그렇지 못해 많이 아쉬웠다. 
LA로 돌아가는 내내 마음이 착잡했다.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러간다. 내가 뛰어가 따라잡을 수가 없을 만큼 빠르다. 손용상 선생님에게 좀 더 잘할 걸, 좀 더 예의를 다 할 걸… 지나간 것들은 다 후회투성이다. 
<한솔문학> 10호는 지금 댈러스 문인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고 있다. 

 

                                                                                                   문학매거진 시마 (제19호, 2024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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